사람에게는 누구나 마음속에 오래 머무는 동네가 하나쯤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골목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첫 직장을 다니며 살았던 동네일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는 잠실이 그렇습니다.
잠실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 긴 시간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40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도 잠실에 있고, 젊은 날의 기억도 잠실에 있고, 지금의 삶 역시 잠실에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제 다른 곳으로 이사를 생각하면 마음 한쪽이 쉽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나의살던 동네는 잠실입니다
잠실이라는 동네가 처음부터 특별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저 내가 살던 동네였습니다.
아침이면 익숙한 길을 걸었고, 자주 가던 가게가 있었고, 늘 지나던 길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보는 풍경은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참 오래 이곳에서 살았구나."

40년을 살면 동네가 집보다 편해진다
오랫동안 한 동네에서 살다 보면 그곳의 모든 것이 익숙해집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길로 가야 빠른지, 어느 시간대에 차가 막히는지, 어느 곳에 잠깐 주차하기 편한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자주 가던 식당이나 카페도 있고, 오랫동안 봐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익숙함은 돈으로 살 수 없는 편안함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하면 더 좋은 집을 구할 수도 있고, 더 편리한 시설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익숙함까지 함께 가져갈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결국 추억이 있는 곳에 마음이 간다
잠실에서 40년을 살면서 수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좋았던 일도 있었고, 힘들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누군가와 웃었던 기억도 있고 혼자 고민했던 시간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모든 기억이 결국 하나의 풍경처럼 남는 것 같습니다.
어느 길을 지나면 예전의 기억이 떠오르고, 어떤 장소를 보면 오래전 일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동네는 단순히 집이 있는 장소가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쌓여 있는 공간입니다.
떠나고 싶으면서도 떠나기 어려운 마음
살다 보면 한 번쯤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더 조용한 곳도 좋고, 더 좋은 환경도 좋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보고 싶기도 합니다.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정말 떠나려고 생각하면 마음이 쉽지 않습니다.
40년 동안 익숙했던 길을 떠나고, 아침마다 보던 풍경을 떠나고, 오랫동안 익숙했던 동네를 떠난다는 것이 생각보다 큰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쩌면 내가 떠나기 싫은 것은 잠실이라는 장소 자체보다 그곳에 남아 있는 나의 시간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안함이라는 것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젊었을 때는 새로운 것이 좋았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익숙한 것이 편합니다.
오랫동안 걸었던 길.
창밖으로 보이는 익숙한 풍경.
늘 다니던 시장과 상점.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
이런 것들이 어느 순간 나에게는 아주 큰 편안함이 되어 있습니다.
편안함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나를 알아보는 공간이 있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실도 많이 변했다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잠실도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예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많이 다릅니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도로가 달라지고 상권도 바뀌었습니다.
사람도 바뀌고 가게도 바뀌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기억하는 잠실은 지금의 잠실과 조금 다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변한 모습을 보면서도 여전히 이곳이 익숙합니다.
아마도 장소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온 나의 시간을 함께 기억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의살던 동네는
누군가에게는 고향이 시골의 작은 마을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 살았던 아파트 단지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잠실입니다.
40년을 살았으니 이제 잠실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닙니다.
내 삶의 상당 부분이 이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더 좋은 곳이 있을 수도 있고, 더 편리한 곳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에게 편안한 곳과 나에게 익숙한 곳은 꼭 같은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잠실은 나에게 익숙하고, 편안하고, 수많은 기억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아직은 이 동네를 떠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오래 산다는 것
한 동네에서 40년을 산다는 것은 그 동네와 함께 나이를 먹는다는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동네의 모습이 변하는 것을 지켜보고, 사람들의 삶이 변하는 것을 보고, 나 자신의 모습도 변해가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곳에 나의 시간이 너무 많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아마 앞으로도 잠실은 계속 변할 것입니다.
새로운 건물이 생기고, 오래된 곳은 사라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이곳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래도 나에게 잠실은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가 오랫동안 살아온 곳.
내가 가장 익숙하게 걷던 곳.
그리고 수많은 기억이 남아 있는 곳.
나의살던 동네는 잠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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